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서울까지 - 2014. 10. 9(목) ~ 10. 10(금)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여행했다. 대전 우리집앞(대덕대교)에서 서울 반포대교까지 자전거로 여행한 성적은 다음과 같다. 이번 여정이 자전거로 여행한 나의 최장기록이며, 두번째 긴 여정은 2007년 추석 대전에서 진주까지 여행한 것이며, 세번째는 금강종주 자전길을 따라 대전에서 군산까지 여행한 것이다.
  • 총 거리: 337.82km
  • 소요시간: 10월 9일 ~ 10월 10일 (1박 2일)
  • 평균속도: 14.82km/h
  • 최고속도: 48.1km/h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서울까지

일상에 찌들어있는 나는 기분의 전환과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몇가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자전거로 서울까지 가보는 것을 택했다. 예전부터 한번 도전해봐야지 하고 염두에 두고 있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은 무언가 고된 일을 단순하게 반복하면서 한동안 생각의 고삐를 풀어놓아야 정리가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1박 2일에 350km 정도면 그 강도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계획한 여정은 다음과 같았다.
  • 대전->세종: 1번 국도
  • 세종->연풍: 오천 자전거길(오천: 미호천, 보강천, 성황천, 달천, 쌍천)
  • 연풍->충주: 새재 자전거길
  • 충주->서울: 한강종주 자전거길
한글날 아침 6시 20분쯤 창밖이 어슴프레 밝아지자 마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대전에서 출발했을 때는 화창했으나 세종시로 넘어오니 안개가 자욱했다. 그 안개 속에서 길을 잘못들어 세종청사쪽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침 운동나오신 분들의 도움으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금강종주 자전거길을 거슬러 합강공원으로 가서 거기서 미호천을 따라 청주로 향했다. 미호천과 병천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칫 길을 잘못 들 뻔도 했으나 마침 지나가는 분의 도움으로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청주를 지나 증평까지 미호천을 따라 계속 달렸다. 출발한지 네시간 정도 되니 피곤하기도 했거니와 배도 고파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증평군의 황금 들판 어디엔가 전봇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풀밭에 앉아서 싸온 김밥을 먹으며 쉬었다. 원래는 싸온 세 줄 김밥 중에 한줄만 먹으려 했으나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두 줄이나 먹었다.

증평군 어디선가 김밥을 먹으며(70km 지점, 10. 9 10:23)

힘들면 잠시 쉬면서 미호천과 보강천을 따라 증평 들판을 계속 달렸다. 오천 자전거길의 중간지점인 증평군 백로공원을 지나 모래재를 넘어 괴산군으로 접어들었다.

백로공원에서

모래재 정상에서

괴산군의 괴강교 주변은 올해 봄에 내가 오천 자전거길 종주를 할 때 가족과 함께 다시 와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만큼 풍경과 달천을 따라 피어있는 벚꽃이 인상적이었다. 그 길을 다시 지나가는 나는 내년 봄에 꼭 가족과 함께 와보리라는 다짐을 다시 했다.

괴산군 괴강교

달천을 지나 오천 자전거길의 마지막 천인 쌍천을 따라 나있는 자전거길 옆에는 한국의 맛집 1000선에 오른 "할매 청국장"집이 있다. 올 봄에도 여기서 점심을 먹었었는데, 이번 길에도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증평 어느 들판에서 먹은 두 줄 김밥 덕분에 점심시간을 좀 지나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시 찾은 "할매 청국장"(120km 지점, 10. 9 13:53)

드디어 오천 자전거길의 끝인 행촌교차로에 오후 세시쯤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이전에도 와본 적이 있다. 여기를 넘어서는 이제까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행촌교차로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중심이다. 새재 자전거길을 따라 북으로 가면 남한강종주 자전거길과 북한강 자전길로 이어지고, 남으로 가면 낙동강종주 자전거길과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오천 자전거길과 금강종주 자전거길로 갈 수 있다. 올 봄에 오천 자전거길 종주를 나섰을 때 행촌교차로에서 다음에는 꼭 서울 혹은 부산쪽으로 가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김재동이 "한계를 한계로 인정하면 더 이상 한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행촌교차로는 내가 저전거로 와본 한계지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출발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행촌교차로에서(136km 지점, 10. 9 15:10)
  • 대전->행촌교차로: 135.88km
  • 소요시간: 8시간 49분 19초
  • 평균속도: 15.4km/h
행촌교차로를 지나 충주 수안보로 가기 위해서는 소조령을 넘어야했다. 소조령은 새재 자전거길의 이화령에 비해서 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알려져있으나 이미 140km를 자전거로 달려온 나에게 2km가 넘는 오르막길은 힘겨웠다. 그래서 쉬엄쉬엄 오르막을 올랐다. 소조령을 오르는 길에는 원풍리 마애불상군도 있어서 잠시 쉬면서 부처님도 뵈었다.


자전거를 달리며..

좋은 것은 내리막길이었고
싫은 것은 오르막길이었다.

기뻤던 것은 내가 내리막길을 달릴때
오르막을 오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부러웠던 것은 내가 오르막길을 오를때
내리막길을 달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항상 내리막길만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항상 오르막길만 오르는 사람도 없다.
내리막길을 달리기 위해서는 오르막길을 올라야하며
내리막길이 끝나면 항상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리막길이냐 오르막길이냐가 아니라
나에게 도달해야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며
즐길 수 있는 시원한 바람과
들판 가득한 가을이 있다는 것이었다.


원풍리 마애불상군은 높이가 12m나 되는 큰 암석을 우묵하게 파고, 두 불상을 나란히 배치한 마애불로서 우리나라에는 드문 예라고 한다. 이렇게 두 불상을 나란히 조각한 예는 죽령마애불, 전 대전사지출토청동이불병좌상 등이 있는데, 이것은 법화경에 나오는 다보여래와 석가여래의 설화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원풍리 마애불상군(보물 제97호)

소조령 정상에서

팔봉쉼터에서

어렵게 소조령 정상을 넘어 수안보를 지나 충주로 향했다. 충주로 가는 길에 살미면에서 자전거의 앞 기어를 변속하는 도중에 체인이 꼬이는 고장이 났다. 어떻게 금방 고쳤으나 그때부터 자전거의 기어 소리가 거슬리게 나기 시작했다.

자전거 앞 기어가 고장난 곳(충주시 살미면)

저녁 6시가 조금 안 되어서 충주시내에 도착했다. 나는 자전거의 기어에 고장이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내일 다시 170km 넘는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가 보았다. 충주시내에 있는 한 자전거 수리점에서는 괜찮으니 안고쳐도 된다고 했다. 다른 수리점을 찾아가 보았는데 거기는 문이 닫혀있었다. 무척이나 피곤하기도 해서 나도 자전거 수리하는 것을 단념했다. 충주시내의 한 대형할인 매장에서 저녁에 먹을 거리와 내일 마실 음료를 사서는 가장 가까운 허름한 여관으로 숙소를 잡고는 일찌기 쉬었다.
  • 행촌교차로->충주시내: 40.16km
  • 소요시간: 3시간 3분 58초
  • 평균속도: 13.1km/h
  • 최고속도: 42.6km/h
갈 길이 멀기에 둘째날 10월 10일에도 아침 6시 20분경 길을 나섰다. 충주 대부분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침을 먹기위해 식당을 찾았으나 아침일찍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가다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는데가 있겠지하고 충주에서 팔당대교까지 131km 여정을 시작했다.

팔당대교로

하루를 쉬었지만 피곤함은 다 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엉덩이가 아팠다. 그리고 자전거 안장이 너무 낮아서인지 무릎도 좀 아팠다.

충주 부근은 안개가 자욱해서 안경에 물이 맺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길을 가다가 보이는 몇몇 자전거 휴게소를 들러보았으나 너무 일러서인지 식당은 잠겨있었다. 한강종주 자전거길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전거 길가에 종종 자전거 휴게소며 식당들이 있었다. 그중 한 휴게소에서 간식으로 가져간 과자를 아침으로 먹었다. 과자를 아침으로 먹고 길을 가는데 한 식당이 다행이 문을 열고 있었다. 그 식당에 들어가서 아침으로 요기를 했다.

금가능이옥에서 아침식사를(10. 10 7:29)

아침 여덟시가 넘으니 안개가 개이기 시작했다. 안개가 개면서 보이는 한강의 풍경은 여기가 우리나라가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청주에서 여주까지 가는 길은 정말 길었다. 하지만 길은 너무나 좋았다. 엉덩이와 다리의 통증만 없었어도 가는 길을 훨씬 즐길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여주를 향하여

아름다운 한강 풍경

섬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

여주인지 양평인지 어디선가 길가에 자전거 수리점에 들러서 내 자전거의 기어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나는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는 앞 기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뒷 바퀴의 스프라켓들이 느슨해져있어서 나는 소리였다. 그것을 조이고 약간의 조정으로 내 자전거는 새것처럼 되었다. 신경 거슬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기분도 좋았고 힘도 더 나는 것 같았다.

충주에서 원주를 거쳐 여주, 양평, 남양주, 하남시를 거치는 남한강종주 자전거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가족과 함께 자전거길을 즐기는 사람이 정말로 부러웠고 나도 가족과 함께 이 길을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정도였다. 옛 기차길을 개조한 자전거길에는 기차터널을 지나볼 수 있었고, 북한강철교를 건널 때는 전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웠다. 양수리 다리에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다음에 꼭 아내와 함께 같이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오기도 했다. 내 마음도 모른 채 아내는 나에게 어디냐며 언제 오냐는 질문을 퉁명스럽게 던졌다.

철길을 자전거길로

팔당대교에 가까워질 수록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 다리와 엉덩이의 통증도 점점 회복되었다. 자전거길도 약간 내리막이어서 나는 시원스럽게 달렸다. 그렇게 팔당대교에 나는 오후 3시 반경에 도착했다. 팔당대교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서 먹고, 하남시를 거쳐 서울로 접어들었다.

팔당대교에서(300km 지점, 10. 10 15:29)

하남시에서 서울로 접어드는 한강종주 자전거길은 한강이 넓어져서인지 바람이 꽤나 불었다. 바람을 거슬러 달리기 힘들었다. 원래 나는 한강 하구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시간도 늦었고 금요일 오후 대중교통의 복잡함도 고려하여 여정을 반포대교에서 마치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전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반포대교를 마지막으로(340km 지점, 10. 10 17:29)

  • 충주->서울 반포대교: 161.78km
  • 소요시간: 10시간 54분 23초
  • 평균속도: 14.8km/h
  • 최고속도: 48.1km/h

자전거는 나에게 솔직하다.

태양의 따사로운 손길을
내 등에 직접 닿게 해주고

바람의 경쾌한 속삭임을
내 귓가에 그대로 전해주며

대지의 중후한 울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자전거는 나에게 자유다.

먼 거리를 갈 수 있는 능력을 주면서도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잊지않게 하며

이를 수 없는 속도에 이르게 하면서도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깨우쳐 준다.

자전거는 자유를 주면서도
나를 결코 자만하게 하지 않는다.
자전거는 그렇게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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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